와인은 늘 어렵게 느껴집니다. 병 하나를 앞에 두고도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격, 산지, 품종, 숙성 방식 같은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정보들이 지금의 내 취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쉽게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와인 자체보다도, 와인을 대신 설명해 줄 누군가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됩니다.
이 현상은 단순히 와인이 복잡해서만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복잡한 것들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술, 금융, 여행, 음식까지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그런데 유독 와인 앞에서는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그 이유를 곱씹어보면, 와인이 가진 특성보다는 사람의 선택 방식에 더 가까운 답이 보입니다.
와인은 경험을 전제로 한 대상입니다. 한 병의 와인은 숫자나 성분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마시는 사람의 상태, 장소, 분위기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불확실성은 매력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택의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사람들은 이 부담을 혼자 떠안기보다, 누군가의 해석을 통해 가볍게 넘기고 싶어 합니다.
와인을 대신 설명해 주는 사람의 역할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와인은 이런 상황에서 이런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의 틀을 제공하는 데 가깝습니다. 사람들은 그 설명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줄입니다. 설명은 맛을 결정하지 않지만,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비슷한 구조를 자주 경험합니다. 영화 평론을 보고 영화를 고르고, 여행 후기를 참고해 목적지를 정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보의 정확성보다, ‘내 상황과 비슷한 누군가의 해석’입니다. 와인 역시 같은 방식으로 소비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와인을 잘 아는 사람보다, 와인을 자기 대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와인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반드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는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복잡한 설명보다, 지금의 기분과 상황을 이해해 주는 말을 더 원합니다. 이때 설명자는 전문가라기보다, 취향을 중개하는 역할에 가까워집니다.
와인을 대신 설명해 줄 누군가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취향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취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계속 변합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취향 앞에서, 사람들은 외부의 언어를 빌려 자신을 설명합니다. “이건 내가 좋아할 만한 와인이다”라는 말은 사실, 설명을 통해 만들어진 확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소통의 매개가 됩니다. 설명은 와인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 역할을 합니다. 이 다리가 없다면, 사람들은 선택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와인을 설명해 주는 존재는 소비를 촉진하는 사람이기보다, 경험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와인을 둘러싼 설명 문화는, 우리가 점점 더 ‘이해 가능한 선택’을 원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넘어서, 왜 그 선택을 했는지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와인을 대신 설명해 주는 누군가는 이 요구에 응답합니다. 취향을 대신 정의해 주고, 선택의 이유를 말로 정리해 줍니다.
노브레이커 블로그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우리가 와인을 대신 설명해 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지가 아니라 확신을 미루고 싶은 인간적인 태도에 가깝습니다. 모든 선택을 스스로 완벽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혼자 모든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필요할 때 설명을 빌릴 줄 아는 태도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와인을 대신 설명해 줄 누군가를 찾는 이유는, 우리가 선택을 포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선택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취향과 선택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느슨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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