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선택

색을 다룬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일

NOBRAKER 2025. 10. 27. 20:43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색을 마주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보는 방의 색, 거리의 간판, 옷장 앞에서 고르는 옷의 색까지.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색을 선택했는지보다, 그 선택이 우리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는 한참 뒤에야 자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색은 늘 곁에 있지만, 그 영향은 조용히 작용합니다.

컬러리스트라는 역할은 바로 이 지점에서 떠오릅니다. 색을 예쁘게 조합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색이 만들어내는 인식과 반응을 이해하려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색을 쓰느냐에 따라 넓어 보이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같은 물건도 색이 바뀌면 전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컬러리스트는 이런 변화를 감각이 아닌 의도와 맥락의 문제로 바라봅니다.

색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색은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을 먼저 건드립니다. 말로 표현되기 전에 느낌으로 전달되고, 판단보다 빠르게 반응을 끌어냅니다. 그래서 색은 장식 요소가 아니라, 환경과 사람 사이의 첫 번째 언어로 작동합니다. 컬러리스트는 이 언어가 어떻게 읽히는지를 고민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의 생활 환경이 점점 더 인위적으로 설계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공간, 제품, 화면까지 대부분 누군가의 선택을 거쳐 만들어집니다. 이때 색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행동과 감정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색을 다룬다는 것은 예술적 감각을 드러내는 일이라기보다, 선택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에 가깝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 역할이 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색은 정답이 없고, 같은 색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래서 컬러리스트는 빠른 판단보다, 반복적인 관찰과 검토를 필요로 합니다. 이 일은 “감각이 뛰어난가?”보다 **“사람의 반응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묻게 합니다.

색의 선택은 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개인의 취향, 공간의 목적, 사용자의 환경이 모두 얽혀 있습니다. 컬러리스트는 이 관계를 단순화하지 않고, 서로 다른 조건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의 색이 돋보이기 위해, 다른 색이 물러나야 하는 순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컬러리스트를 떠올리는 순간은 직업을 생각하는 순간이라기보다, 환경을 바라보는 시선을 점검하는 시점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장소에서는 오래 머물기 힘들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질문의 많은 답은 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브레이커 블로그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컬러리스트를 유망 직업이나 자격으로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색이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색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의미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더 강렬한 색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색이 어떤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계속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컬러리스트는 그 질문을 가장 앞에서 던지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색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차분하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