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선택

몸을 고친다는 말 대신, 회복을 돕는 역할이 필요해진 이유

NOBRAKER 2025. 10. 8. 13:09

우리는 오랫동안 몸에 문제가 생기면 “고친다”는 표현을 사용해 왔습니다.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하듯, 아픈 몸도 원래 상태로 되돌리면 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습니다. 이 표현은 간결하고 직관적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어색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기계처럼 단순히 부품을 교체한다고 해서 이전과 똑같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몸을 고친다”는 말 대신, “회복을 돕는다”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말의 선택이 아니라,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가깝습니다. 고친다는 말에는 명확한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이 분명하고, 해결 방법도 존재하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많은 몸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통증이 사라져도 이전과 같은 움직임이 돌아오지 않기도 하고,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여도 생활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회복이라는 개념은 이 불완전함을 전제로 합니다. 회복은 되돌림이 아니라,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예전과 똑같아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금의 상태에서 가능한 최선의 움직임과 생활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회복을 돕는 역할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보다, 어떻게 함께 적응해 나갈지를 고민합니다.

몸을 고친다는 말이 점점 설득력을 잃게 된 이유는, 우리가 몸의 문제를 단일 사건으로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는 아픔이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졌다면, 이제는 생활 전반과 연결된 흐름으로 인식됩니다. 자세, 습관, 환경, 감정 상태까지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친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느껴집니다.

회복을 돕는 역할이 필요해진 이유는, 몸의 변화가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만성적인 불편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회복은 단기간의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적인 동반 과정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 주기보다, 함께 조율하고 조언하며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이 역할은 통제보다는 지원에 가까운 태도를 요구합니다. 몸을 고친다는 접근은 종종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지시로 이어지지만, 회복을 돕는 접근은 “이 정도까지는 가능하다”는 탐색으로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회복의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기준은 하나로 고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그때의 상태를 존중하며 유연하게 조정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회복이라는 개념이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회복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번아웃에서 회복하고, 관계에서 회복하며, 일상의 리듬을 회복합니다. 이때 누구도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을 회복이라고 부릅니다. 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회복을 돕는 역할이 강조되면서, 관계의 중요성도 함께 드러납니다. 고치는 과정은 일방적인 경우가 많지만, 회복은 대체로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설명을 듣고, 상태를 공유하고, 조정을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방법보다, 상대의 상태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노브레이커 블로그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특정 직업이나 역할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우리가 몸을 대하는 언어를 바꾸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떤 인식의 전환을 담고 있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회복을 돕는다”는 표현에는, 완벽함을 강요하지 않는 시선과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이전으로 돌아가겠다는 다짐이 아니라, 지금의 몸으로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을 고친다는 말 대신, 회복을 돕는 역할이 필요해진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글이 몸과 회복,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 한 번쯤 천천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