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선택

자라게 하는 일은, 고치려 들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NOBRAKER 2025. 11. 20. 20:51

식물을 돌보는 시간에는 독특한 리듬이 있습니다. 급하게 서두를수록 식물은 잘 자라지 않고, 오히려 기다릴수록 변화가 분명해집니다. 물을 주고, 햇빛의 방향을 살피고, 잎의 상태를 관찰하는 일은 반복적이지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은 눈에 띄는 결과를 빠르게 보여주지 않지만, 분명히 축적됩니다. 원예치료라는 개념은 바로 이 느린 변화의 힘에서 출발합니다.

식물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요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상태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잎의 색, 줄기의 탄력, 흙의 습도 같은 작은 신호들이 식물이 놓인 환경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원예치료사는 이 신호를 읽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람이 그 신호를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가깝습니다.

식물을 돌보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현재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흙을 만지고, 잎을 정리하고, 자라는 속도를 관찰하는 동안 생각은 눈앞의 대상에 머물게 됩니다. 이 과정은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설계된 활동이라기보다,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상태를 인식하게 만드는 경험으로 작용합니다. 원예치료는 바로 이 경험을 중심에 둡니다.

원예치료사가 하는 일은 식물을 잘 키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식물을 매개로 사람이 자신의 속도를 되찾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식물은 비교하지 않고, 재촉하지 않으며, 각자의 조건에 맞춰 자랍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역할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현대의 일상이 지나치게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결과를 빨리 확인해야 하고, 성과를 눈에 보이게 증명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원예치료는 정반대의 방향을 제안합니다. 잘하고 있는지 묻기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느끼게 하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 방식이 잘 맞는 것은 아닙니다. 원예치료는 즉각적인 반응이나 분명한 변화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길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영역은 “눈에 보이는 효과를 원하는가?”보다 **“과정 자체를 존중할 수 있는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묻게 합니다.

식물은 늘 환경에 반응합니다. 같은 종이라도 놓인 장소와 돌봄의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이 점에서 원예치료는 ‘치유’를 특정한 결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환경과 관계가 바뀌면 반응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변화는 강요되지 않고, 조건이 마련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원예치료사를 떠올리는 순간은 직업을 선택하는 순간이라기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점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를 고치려 하기보다, 자랄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드는 일. 이 태도는 식물을 대할 때뿐 아니라,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노브레이커 블로그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원예치료사를 따뜻한 직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식물을 매개로 한 활동이 지금의 사회에서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속도와 효율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원예치료는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태도의 전환에 가깝습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더 빠르게 자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물은 그 시간을 스스로 알고 있고, 사람은 그 시간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예치료는 이 간극을 천천히 좁혀가는 과정입니다. 이 글이 식물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느긋하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