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선택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나를, 향으로 남기는 방식

NOBRAKER 2025. 11. 17. 20:21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얼굴이나 목소리, 말투처럼 눈과 귀로 남는 기억도 있지만, 어떤 기억은 훨씬 조용한 감각을 통해 오래 남습니다. 그중 하나가 향입니다. 오래전에 스쳐 지나간 사람의 향이 어느 날 문득 떠오르거나, 특정 장소의 냄새가 한순간에 과거의 장면을 불러오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익숙합니다. 향은 설명하지 않아도 감정을 먼저 건드리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향수를 떠올리면 흔히 ‘꾸미는 도구’나 ‘이미지를 만드는 수단’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향의 역할은 그보다 훨씬 깊습니다. 향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장식이기보다,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어떤 향을 선택하느냐는 지금의 기분, 생활의 리듬,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향을 고르는 일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향수 전문가라는 표현은 단순히 향을 잘 아는 사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역할은 향을 조합하는 기술보다, 사람이 향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기억하는지를 이해하려는 태도와 더 가깝습니다. 같은 향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습니다. 향에는 정답이 없고, 반응은 늘 개인의 경험과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향을 다룬다는 것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작업입니다. 눈에 보이는 색이나 형태와 달리, 향은 공간과 시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향이라도 계절, 날씨, 피부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향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 변화를 통제하려 하기보다, 변화 자체를 전제로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감각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일상이 점점 더 시각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화면과 이미지가 넘치는 환경 속에서, 후각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감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향은 여전히 우리의 기억과 감정에 가장 빠르게 닿는 통로로 남아 있습니다. 말보다 먼저 반응하고, 생각보다 먼저 기억을 끌어올립니다.

향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분명한 인상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향으로 존재감을 표현하고, 어떤 사람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향으로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 선택에는 성격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묻어납니다. 향은 설명하지 않아도, 선택한 사람의 방향성을 조용히 드러냅니다.

모든 사람에게 향을 다루는 일이 잘 맞는 것은 아닙니다. 향은 결과를 수치로 확인할 수 없고, 반응 역시 즉각적이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 영역은 “감각이 예민한가?”보다 **“다른 사람의 반응을 존중할 수 있는가?”**를 먼저 스스로에게 묻게 합니다.

향수 전문가라는 세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점점 더 개인화된 표현 방식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 머물러도, 향은 각자의 영역을 남깁니다. 그 영역은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집니다. 향은 타인에게 자신을 알리는 방식이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남기는 흔적이 됩니다.

노브레이커 블로그에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향수 전문가를 유망한 직업이나 트렌드로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왜 향이라는 감각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표현 수단으로 남아 있는지, 그리고 그 감각을 이해하는 태도가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기록해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은 계속 변해왔습니다.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더 강한 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어울리는 감각을 계속해서 탐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향은 그 탐색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이 글이 향을 단순한 취향을 넘어,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